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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리본의 시절

분홍 리본의 시절
권여선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나의 점수 : ★★★★





작가는 틀림 없이 한 페이지 분량을 쓰는 데 보름께나 걸렸을 것 같다.
문장 하나 하나가 악바리 근성을 보여주고, 그 말 아니면 이가 빠득빠득 갈릴 그 상황을 어찌 설명할까 대단해보이기까지 하다.
어찌 보면 불쾌하기도 한 면모이다. 빈소 어느 한 구석에서, 고인과의 악연을 불구의 언어로 외쳐대는 조문객 한 무리의 분위기를 느끼는 기분이기도 하다.

1996년 등단했지만, '청탁'이 없어서 그간 두드러지는 작품활동이 없었다는, 다소 털털한 외양과 말투의 그녀를 보노라면
저렇게 시니컬한 면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필력인가 싶기도 하다.

... 권여선 소설은 그에 대해서는 시종 심드렁 하다. 외려 어느 편인가 하면, 소설을 읽는 우리는 내내 우울과 불쾌를 견뎌야 한다.

정말 그렇다. 등장 인물은 모두 어딘가 부족하고 그로 인해 주변적 인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부족하고 비루한' 존재를 덮고 보완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치열하며 강박적인 (묘사 덕인 것 같지만) 삶을 꾸리고 있다. 반면에 삶 자체는 너무 싱겁고 불연듯 해서 그들이 어떻게 오고 갔는지에 대한 기억은 독서 후에 잘 남지 않는다.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굉장히' 지배적인 경험을 한 셈이다.

먼저 읽어 본 사람은 이 책을 두고 해부 보고서라 일컬었는데, 완전히 동감하는 바이다.
감정과 성격과 고뇌와 아픔에 대한 해부다. 적나라하게 찢어내고 발라 내어 '어떻다'라는 것을 독자에게 명명하게 보여주는.
혹자는 독서 후의 감정이 '후련함'일 수도 있겠다.
몰입의 정도에 따라서 이 책은 대리 만족이 될 수도 있고, 불쾌한 조어법의 9,800원이 될 수도 있겠다.

나? 내겐 후련함은 없었지만, 불쾌하진 않았다. 불편한 독서의 과정이야 어느 쪽이든 치뤄야 할 댓가 같다, 이 책은.

by AcidHouse | 2008/05/16 17:22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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