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재구성하지현 지음 / 궁리
나의 점수 : ★★★★★
원래 고르려던 책의 옆에 자리하고 있던 다소 눈에 띄는 제목이라 충동적으로 집어들었다. 마치 '범죄의 재구성'이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 '재구성'이라는 것이 어떤 제반 현상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나 현상을 좀 더 잘 볼 수 있게, 혹은 분석하기 좋게 해주는 과정이라는 뜻에 맞는 단어라면 이 책의 제목은 간결하면서도 책을 잘 설명하는 좋은 예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세상의 칠판에서 관계 방정식 열두 개를 풀다'라는 부제는 그다지 신선하지도 와닿지도 않는 식상한 멘트였지만, 책 내용을 연관지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 제목 같지 않은가! :)
저자, 하지현씨는 남자분이시다. (처음에 여자인 줄 알고 집었다 30% -_-)검색해 보니 지은 책, 감수하거나 번역하신 책이 꽤 있다.
정신과 전문의로 건국대학교 의대 교수로 계시고, 책을 보아하니 영화도 많이 보시는 모양이다. 책 표지에 쓴 대로 정말 영화를 '관계 설정'의 한 장場으로 보고 그에 걸맞는 분석을 해 놓았다. '부제'가 어색하지 않은 순간.
12 가지의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는 소제목들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나이를 어림잡을 수 있는 행간도 볼 수 있고, 조금은 가볍게(어렵지 않으면서도 놓치는 대목이 없이)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등장 인물간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통해 독자가 느낄 수 있는 심정적 대입법을 유도하려는 시도가 흥미로웠다. 책의 지문에 계속 나를 대입해가면서 읽어 내려가는 느낌은 롤러코스터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슬로우 모션으로 보며 감정과 생각과 '교류 및 교통'에 대한 나의 현재를 돌아보게 되는 그련 비유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체는 인생 선배의 조언을 술자리가 아닌 영화관에서 진득하게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딱딱한 구석이 없다. 그렇다고 너무 가벼워, 생활어를 남용하며 듣게 되는 그런 류의 조언 같이 폴폴 날아가는 깃털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중한 구석이 있고. 심리학이나 정신 병리에 대한 어려운 용어 대신 흘깃 지나치다 잠시 생각해 보면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 있을만큼 잘 풀어냈다. 그렇다고 문학적 소양이 뛰어나서 읽으며 눈문을 흘릴 수 있는 미문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 주제에 대해 '딱 읽기 편하고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좋은 글로 풀어 놓은 것 아닌가 하는 게 이 꼬인 표현의 핵심이겠다. -_-a
300여 페이지와 함께 내 과거의 생각과 경험과 느낌들을 꺼내 곁에 두고, 끝을 본 후의 느낌은 자그마한 마음의 치료서를 무거운 마음으로 읽고 난 후련함이랄까.. 뿌옇게 먼지 쌓인 보물상자의 뚜껑을 대충 닦아내 열어서 그 안에 간직하고 있던 소중하다 생각했던 덩어리들을 차근차근 다시 살펴보고 조심스레 다시 넣어 단단히 잠근 경험을 한 것 같다.
더불어 소개된 영화나 책들을 찾아보고픈 충동이 일어나는 건 나와 저 건너편 대치점에 있는 상대와의 이해를 바라는 자그마한 희망적 노력의 발로가 아닐까 한다.주변의 관계에 대한 감사함으로 독서를 마칠 수 있어 좋았다고나 할까? :)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을 옮기며...
p. 221
내 안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긍정해주는 사람, 자신의 불안과 약점을 드러내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사람, 자신을 내맡긴다는 불안이나 감정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게 해주는 사람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라고 한다.
...나이는 먹어가지만 아직까지 확실히 안다고 하진 못하겠다.